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슈베르트 (문단 편집) === 죽음 === 하지만 슈베르트의 병세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얼마나 심각했냐면 기억력이 감퇴하여 기억도 못하고 만취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려 거동이 힘들었으며 헛것을 보고 혼잣말을 하며 횡설수설하였다. 또한 심한 두통과 고열, 구토까지 하였다.] 결국 1828년 11월 19일에 혼수상태에 빠진 슈베르트는 공무원이던 둘째 형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31살이라는 너무나도 한창의 나이에 위대한 작곡가의 삶을 마감했다. 혼수상태였을때 슈베르트는 "묻혀지는...... 건... 싫어... 홀로 있는 건 싫어......" 라고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페르디난트가 "프란츠, 모두 널 걱정하여 모였단다. 걱정마라."고 말하자 갑자기 그는 >'''하지만, 여긴 베토벤이 없어!''' 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존경하던 이의 이름을 외친 모양. 그리고 그렇게 숨을 거두면서 저 말이 [[유언]]이 되고 말았다. 이때 임종을 지켜본 친구 슈빈트는 형 페르디난트가 갓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을 만지며 한참을 울었으며 "너무 일찍 갔구나, 프란츠. 너무나도 일찍 갔어!" 라며 슬퍼했다고 회고했다. 사후 슈베르트의 바람대로 형 페르디난트와 친구들이 시신을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이 묻힌 빈 벨링크 공동묘지에서[* 일명 음악가들의 공동묘지. 비엔나를 무대로 활약했던 음악가의 거장들이 이곳에 묻혀 있다.] 영면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었고, 베토벤의 바로 옆에 안장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298&aid=0000162788|슈베르트 및 여러 유명 음악가들의 묘비석]]. 처음에는 웬 [[듣보잡]]을 감히 베토벤 곁에 묻느냐는 반대도 있었으나, 슈베르트의 후원자이자 당시 빈 음악계의 큰손이던 레오폴트 폰 존라이트너[* 한국에는 흔히 백작으로 알려져있으나 한국어나 독일어로 레오폴트 폰 존라이트너를 검색하면 백작에 해당하는 Count나 Graf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존라이트너의 성명이 Leopold [[백작|Graf]] von Sonnleithner가 아닌 Leopold Edler von Sonnleithner라는 것을 봤을 때 그는 백작이 아닌 하급 귀족(Edler는 오스트리아의 작위 중 가장 낮은 등급의 작위이다. 영어로는 단순히 Noble, Nobleman으로 번역한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출생 당시 레오폴트 안드레아스 이그나츠 존라이트너, 즉 평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더더욱이 백작과는 거리가 멀다. 여담으로 그의 할아버지였던 크리스토퍼 존라이트너는 오스트리아의 법학자이자 작곡가였다고 하며 그의 아버지인 이그나츠 폰 존라이트너 역시 변호사였다고 한다. 아버지 이그나츠 역시 슈베르트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아버지 이그나츠와 아들 레오폴트는 슈베르트를 비롯해 베토벤, 프란츠 그릴파르처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굉장히 유명했다고 한다. 프란츠 그릴파르처는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겸 변호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극작가였는데 프란츠 그릴파르처의 어머니가 레오폴트 폰 존라이트너의 고모였기 때문에 둘은 사촌지간이 된다. 어쨌든 슈베르트를 후원하던 이그나츠 폰 존라이트너 (아버지 존라이트너)와 아들 레오폴트 폰 존라이트너 (아들 존라이트너) 모두 백작이 아니었으며 존라이트너 가문은 법조인과 음악가를 배출하던 [[부르주아]]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가 '20년 아니,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베토벤 못지않게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을 위대한 인물.' 이라고 적극 옹호하고 생전의 베토벤 씨도 잠깐 만났음에도 그를 인정했던 만큼, 곁에 묻히면 무척 기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쇼버에게 생을 마감하기 1주일 전인 1828년 11월 12일에 보낸 편지가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데, 여길 봐도 그의 마지막 당시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잘 있었어? '''나는 너무나도 아프다네. 고열과 어지러움이 계속되고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드네. 먹을 것을 먹는 즉시 토해버리고 열하루째 물만 마시고 있어.''' > >그나마 페르디난트 형과 린나(누이동생)가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있어줘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간혹 좀 낫기도 하고 그러면 책을 읽고 있다네, 지금 [[모히칸족의 최후]]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네. 이거 작가인 쿠퍼가 쓴 다른 책이 있으면 좀 빌려줄 수 있겠나? > >자네의 친한 친구인 프란츠가 > >1828년 11월 12일. 이 편지는 빈에 있는 슈베르트 생가 박물관에 벽에 걸려 액자로 전시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